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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글의 아름다운 단순성

2024-07-26     유원열 목사
사진=뉴시스

세종대왕은 1446년 백성들의 원활한 언어생활을 위해서 아름답고 과학적인 원리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반포하였다. 그러나 양반 귀족들의 강한 반대로 훈민정음은 조선의 공식 문자로 채택되지 못하고 '언문'이라고 무시와 천대를 받으며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쉽고 편리한 한글을 두고도 한자 교육을 받지 못한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문맹의 어둠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존 로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이다. 그는 만주를 오가는 조선의 상인들 덕분에 한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로스는 1876년 고려문을 방문하여 한약재 상인 이응찬을 만났으며, 이응찬은 로스의 첫 번째 한국어 교사가 되었다. 로스는 한글의 가치와 잠재력을 바로 알아보았다. 언어에 대한 그의 재능이 그런 통찰력을 갖게 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430년이 지나서야 로스 선교사가 비로소 조선어 알파벳의 아름다운 단순성을 극찬하고 있다.

"조선어 알파벳은 그 간소하고 실용적인 면에서 내가 아는 한 가장 훌륭한 알파벳이다. 조선어 동사의 아름다운 유연성은 서양의 어떤 근대적인 언어에서도 그와 필적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고대 희랍어가 그 유일한 비교 대상이 될 만하다. 만약 일본어가 조선어 알파벳을 도입한다면 대단히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일본어와 조선어의 음절 문자표가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로스는 조선어 알파벳이 너무나 아름답고 단순하여 30분 안에 충분히 통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존 로스에게는 당시 한국인들이 한글에 대해 가지고 있던 태도가 참으로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은 자기 나라의 문자가 있다는 사실을 외국인들에게 인정하기를 꺼리며, 자기들은 늘 한자를 쓴다고 말한다. 조선에 한글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난 후에도 그들은 한글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선어를 한글로 쓰는 것은 더욱 싫어한다. 게다가 그들은 자기 나라의 언어로 읽고 쓰는 능력이 교육받은 사람의 자격을 보여주는 충분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 자격은 오직 한자를 잘 아는 사람에게만 적용한다." 로스는 조선인의 이런 태도가 낯선 외국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과 자기 나라의 땅을 그들이 빼앗으려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이 한글을 얼마나 무시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었는지 그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존 로스는 한국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부문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서양 언어로 최초 한국어 문법책과 한국 역사책을 펴냈고, 최초로 신약성서를 한글로 번역했으며, 최초로 한글 띄어쓰기를 도입했다. 존 로스는 1877년 「한국어 첫걸음」(Corean Primer)을 펴냈고, 1879년 「한국사」(History of Corea)를 출판했다. 조선 왕조가 몰락하던 19세기 말 그는 자신이 입국조차 할 수 없는 압록강 너머 조선 땅을 바라보며 한국어 문법책과 한국의 역사책을 간행한 것이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가? 스코틀랜드 선교본부는 로스가 선교활동에 전념하지 않고 한글 성서 번역과 역사서 저술 등 학구적인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고 그를 심하게 질책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스는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한국인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말로 쓰여진 성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열강의 패권 다툼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형편에 처한 작은 은둔의 나라 조선의 역사와 문화와 지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가 한국인을 사랑하는 따뜻한 눈길로 한반도를 바라보았기에 한글의 보배로운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