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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최초의 한글 성경

2024-08-14     유원열 목사
존 루스 선교사에 의해 제작된 최초의 한글 성경 

1882년 최초로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은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이다. 그가 1872년 중국 동북부 만주로 파송되었을 때,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서양인들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상황이었다. 조선에서는 1866년 병인박해로 8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었으며,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영국에서 파송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순교하였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로 조선은 프랑스 함대와 미국 군함에 의해 차례로 보복 공격을 당했고, 조선의 쇄국정책은 더욱 강경해졌다.

서양인들을 이처럼 서슬이 퍼렇게 배척하는 조선을 존 로스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는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들이 먼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조선 사람들이 서양의 외국인들을 무조건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미개한 야만족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진 민족임을 알았다.

1874년 로스는 조선인을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고려문을 찾아가게 된다. 당시 조선이 청나라와 교류할 수 있는 통로는 고려문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로스가 두 번째 고려문을 방문한 것은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의 문호개방이 이루어진 1876년이다. 조선의 상인 이응찬이 압록강을 건너다가 물건을 모두 강물에 빠뜨리고 방황하다가 로스의 첫 한국어 교사가 되었다. 로스는 조선이 여자들이나 아이들도 며칠이면 해독할 수 있는 훌륭한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선인들이 사용하는 문자는 표음문자인데다가 매우 단순하고 아름다워서 누구나 쉽게, 그리고 빨리 배울 수 있다."

이와 같이 로스는 소리글자인 한글이 지닌 가치와 우수한 잠재력을 잘 알았다. 로스는 고려문에서 만난 이응찬, 김진기, 서상륜, 백홍준 등 의주 청년들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본격적으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발간하였다. 이 최초의 한글 성경은 로스의 한국어 교사들이 평안도 의주 출신 상인들이기 때문에 평안도 사투리로 번역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로스는 조선에서 한글 성경이 위클리프가 번역한 영어 성경이나 말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과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조선에서 한문 성경은 옛 영국이 사용하던 라틴어 성경인 셈이며, 조선 문인들은 중국인들만큼 한문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문인들에게도 한글 성경이 한문 성경보다 더 읽기 쉽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조선어의 아름다운 유연성과 다양한 표현력, 조선어 동사 특유의 다채로운 의미의 정확한 전달에서 비롯된다. 또한 조선어 구두법의 언어 표현 방식은 여러 절과 보조 및 주요 문장을 내가 아는 그 어떤 언어보다 훨씬 더 긴밀하고 확실하게 연결해 준다."

로스는 한글이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기 때문에 한글 성경 번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 한글 성경은 이 나라 여성들과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 그리고 글을 모르는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이 세상 구세주의 놀라운 사랑을 알게 해줄 것이다."

최초로 한글 성경을 번역한 로스가 조선의 국문학자가 아니라 고려문에서 백수가 되어 떠돌던 상인에게서 조선어를 평안도 사투리로 배웠다는 사실이 눈물겹다. 남녀의 차별, 신분의 차별이 엄격하던 조선 시대에 모든 백성의 일상적인 삶을 귀하게 여긴 세종의 마음, 로스가 그런 고귀한 마음을 가졌기에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이 가능했던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