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동안 나의 집이 되어준 고마운 텐트이다. [사진=윤노리작가]
7주동안 나의 집이 되어준 고마운 텐트이다. [사진=윤노리작가]

 [월요신문=윤노리 작가 ]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침낭에 돌돌 말려 있는 몸은 내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어쩐지 밤새 가위눌린 것 마냥 불편하더라니...'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멀리 떨어진 공용 화장실에 다녀오려 했지만 잠이 이겼다. 이제야 겨우 몸을 일으켜 겹겹의 잠긴 텐트 지퍼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푸카키호수(Lake Pukaki)와 마운트쿡(Mount Cook) 전경. [사진=윤노리작가]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푸카키호수(Lake Pukaki)와 마운트쿡(Mount Cook) 전경. [사진=윤노리작가]

 쌀쌀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기지개를 한번 켜본다. 딱딱한 바닥에 밤새 골반이 짓눌린 모양이다. 허리에서는 두두둑 소리가 난다. 화장실은 멀기만 하다. 반 쯤 눈을 감고 걷는 동안 밤새 누군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에 통증이 밀려왔다. 집에서 오매불망 날 기다리고 있을 침대가 너무도 그리웠다. 1박 더 남았지만 얼른 집에 가고싶다. 내 인생의 첫 캠핑은 그러했다. 하지만 이번 캠핑은 다르다. 나는 더 이상 그리워할 집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이곳이 나의 집이고 내가 누워있는 이 침낭이 내 침대다. 누구에게나 집은 제일 편하다. 현재 나의 집인 이 텐트가 나에게 가장 편한 곳이 되었다.

타우랑가의 한 해변. 자연에 나오면 비싼 장난감이 필요없다. 작은 조개껍데기 하나도 아이들에겐 훌륭한 장난감이 된다. [사진=윤노리]
타우랑가의 한 해변. 자연에 나오면 비싼 장난감이 필요없다. 작은 조개껍데기 하나도 아이들에겐 훌륭한 장난감이 된다. [사진=윤노리]

'삶이란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라 누군가 말했던가? 아니라면 오늘부터 내가 한 말로 기억되길 바라본다. 내 삶은 언제나 변화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 삶은 늘 더 나은 것을 위한 새로운 도전의 반복이었고 그 종착지로 뉴질랜드 이민을 택했다. 누군가에겐 꿈의 여행지일지 모를 뉴질랜드지만 나는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라는 타이틀로 10년을 거주했다. 남의 나라에서 일을 하고 아이 둘을 키우며 그렇게 삶의 모진 풍파를 견뎠고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다. 반복되는 뉴질랜드 이민법의 변경,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 등으로 인해 남들보다는 다소 오래 걸린 영주권취득 역시 결국엔 이뤄내었다. 영주권 승인을 받던 날 신랑과 부둥켜안으며 "너무 고생했다, 이제는 뉴질랜드에서 잘 살기만 하면 된다"라고 서로 다독이며 기쁨을 만끽했지만, 곧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가족 모두가 다시금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뉴질랜드 남섬의 북쪽도시 넬슨(Nelson)에 위치한 케이블베이(Cable Bay). [사진=윤노리작가]
뉴질랜드 남섬의 북쪽도시 넬슨(Nelson)에 위치한 케이블베이(Cable Bay). [사진=윤노리작가]

 귀국을 위해서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던 집과 사용하던 살림, 그리고 타던 차를 모두 정리해야 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일괄적으로 양도하는 일괄매매(이민계에선 '살림인수'라고 이야기한다)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언제나 느긋한 뉴질랜드에서 빠른 진행은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영주권의 끝인 영구영주권을 위해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영주권으로 임시영주권을 받은 후 2년안에 나라에서 정한 거주기간을 채워야한다) 7주라는 기간을 뉴질랜드에 더 머물러야했다. 성공적인 일괄매매와 영구영주권, 이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다 잡을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때 딱 머릿속을 스치는 하나, 캠핑이었다.

뉴질랜드  와이히 해변(Waihi Beach)에서 먹는 유명한 와이히 피자(Waihi Pizza)는 그 맛이 배가 된다. [사진=윤노리작가]
뉴질랜드  와이히 해변(Waihi Beach)에서 먹는 유명한 와이히 피자(Waihi Pizza)는 그 맛이 배가 된다. [사진=윤노리작가]

 물론 단기숙소를 잡을 수는 있지만 1-2월은 뉴질랜드의 한여름으로 극성수기이기에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더더욱 캠핑은 나에게 당면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최적의 도구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마침 필요한 캠핑도구도 갖추어져 있고, 불편했지만 경험도 있다. 여행 궁합 잘 맞는 신랑도 있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과의 시간이 늘 아쉬웠는데 이런 기회 역시 또 언제 있을까 싶으며, 그동안 다녀보고 싶었지만 삶을 사느라 마음에만 품어왔던 뉴질랜드의 명소들 리스트 또한 있다. 이렇게 하나둘씩 생각하다 보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뉴질랜드 북섬 오호페 해변(Ohope Beach). 뉴질랜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변 1위로 뽑혔다. [사진=윤노리작가]
뉴질랜드 북섬 오호페 해변(Ohope Beach). 뉴질랜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변 1위로 뽑혔다. [사진=윤노리작가]

 텐트, 테이블 의자셋트, 바닥매트, 어른침낭 2개, 어린이침낭 2개, 요리를 위한 최소한의 양념들, 작은 보냉백, 라이트 2개, 샤워도구 그리고 여행용캐리어 2개. 할 수 있는 최대로 짐을 줄였고 모든 짐은 아주 깔끔하게 캠핑을 위해 마련한 밴(van) 트렁크에 실렸다. 이제 진짜 출발이다. 마치 등에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된 느낌이다. 기분이 묘했다. 트렁크는 무거웠겠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그렇게 우리가족은 정든집에 손을 흔들며 7주간의 캠핑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퍼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북섬의 한 중소도시, 타우랑가 마운트 마웅가누이(Mount Maunganui, Tauranga)로 결정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