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부이치치 목사와 그 아내. 사진=닉 부이치치 인스타그램
닉 부이치치 목사와 그 아내. 사진=닉 부이치치 인스타그램

예수와 그의 제자들 일행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을 만났다. 제자들이 예수께 질문을 하였다.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시각장애의 원인이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인가? 절망적인 어둠 속에 있는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며, 제자들은 이 질문을 그 시각장애인의 가장 중대하고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신체의 장애가 죄의 결과라고 전제하고 있는 제자들의 그릇된 판단과 전혀 다른 차원의 대답을 하신다. "그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시각장애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시각장애인을 믿음과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다.

교육심리학자 하임 기너트는 "학생은 교사의 눈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고 하였다. 교사의 학생관이 학생의 자아관 형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을 항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학생의 장래를 희망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1885년 3월, 설리반 선생이 삼중의 장애 소녀 헬렌 켈러를 만났을 때, 설리반 선생에게는 헬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있었다. 그런 믿음과 희망이 있었기에 설리반 선생은 그 위대한 교육의 여정을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각과 청각, 그리고 언어 장애로 인해 완전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헬렌 켈러를 믿음과 희망으로 가르친 설리반 선생은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교사이다. 헬렌 켈러가 시각과 청각의 완전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숲길을 산책하며 정겨운 새소리를 듣는다는 게 신비롭지 않은가? 헬렌 켈러의 성공적인 인생은 20세기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헬렌 켈러가 장애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장애를 통하여, 더욱 고귀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중 장애의 어둠 속에 있는 어린 소녀 헬렌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던 설리반 선생의 믿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가? 그러기에 헬렌 켈러는 자기가 만약 '3일만 볼 수 있다면' 제일 먼저 설리반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21세기 우리 시대에 닉 부이치치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는 팔과 다리가 없는 몸으로 태어났다. 그런 몸으로 닉이 바다에서 수영과 윈드서핑을 즐기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곁에도 설리반 선생과 같이 위대한 믿음의 교사가 있을 게 분명하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닉은 특수학교에서 특수교육을 받지 않았고, 일반학교에서 보통 학생들과 동일한 교육과정으로 성장했다는 게 아닌가? 그러면 호주의 교육제도, 그리고 호주의 교사들이 얼마나 훌륭하겠는가? 그런데 닉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학교폭력을 겪기도 했다는 것이다.

닉 부이치치는 신체의 장애로 인한 한계를 뛰어넘어서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16년 닉의 아버지 보리스 부이치치의 저서 「완전하지 않아도 충분히 완벽한」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닉의 부모는 훌륭한 믿음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이 애초부터 특수교육 전문가는 아니었다. 닉이 팔과 다리가 없는 몸으로 출생하자 당황하고 슬퍼하며, '자신들이 과연 닉을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보통의 부모였다. 닉이 일반학교에서 보통 아이들과 동일하게 통합교육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닉의 부모는 호주의 학교 당국과 여러 번 부딪치기도 하였다. 극심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비결은 결국 자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이 아니겠는가? "사랑이 길을 만든다." 닉의 아버지 보리스 부이치치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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