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총리 포함 의원 120명, 신사 공물 봉납
​​​​​​​"존중의 마음 표하는 것 당연"하다며 비난 일축

야스쿠니 신사. 사진=위키피디아
야스쿠니 신사. 사진=위키피디아

[월요신문=이종주 기자]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전쟁범죄자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올해도 공물을 봉납했다. 그를 이어 일본 국회의원들 또한 집단으로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비난에도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기사다 정권에 대한 우익 성향 국민들의 지지 확보 차원이란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현재 같은 흐름이 한동안 계속 이어져 일본의 우경화가 더욱 강화될 것이란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21일 시작된 춘계 예대제(제사)를 맞아 '내각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명의로 '마사카키'로 불리는 공물을 야스쿠니 신사에 봉납했다. 기시다 총리 외에도 누카가 후쿠시로 중의원 의장, 오쓰지 히데히사 참의원 의장도 마사카키를 봉납했다. 마사카키는 신사 제단에 바치는 비쭈기나무 화분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 전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본제국이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영령 246만 6000여 명을 추모하는 시설이다. 특히 일본은 주변국 몰래 극동국제군사재판에 따라 처형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신사에 합사한 바 있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에선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이 과오를 잊은 채 일제 군국주의 침략전쟁을 스스로 미화하고 이를 발판삼아 과거와 같이 주변국에 배타적 적대 행위에 나설 수 있다며 우려해 왔다.

아베 따라가는 기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주변국의 반발이 크다 보니 일본 내각을 책임지는 역대 일본 총리들의 경우 1990년까지는 신사 참배를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다시금 문제시 된 건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집권 이후다. 노골적으로 평화헌법 개정된 우경화 의지를 내비친 고이즈미 총리는 임기가 끝난 2006년까지 매년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 신사 참배를 강행해 왔다. 특히 그는 전범자들의 신사 합사에 대해 옹호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를 이어 총리직에 오른 아베 신조 총리의 경우 2013년 12월 역대 현역 총리 중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해 국제적 외교 마찰을 낳기도 했다.

아베 총리를 이은 기사다 총리의 경우 아직까지 직접 신사 참배는 하지 않고 있는데 공물 봉납은 매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기시다 총리 외 일본 정부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직접 참배 또한 지속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신도 요시타카 경제재생담당상이 참배했으며, 일본의 초당파 의원연맹인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원들 또한 참배를 진행됐다.

특히 신도 경제재생담당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오지마 수비대를 지휘한 구리바야시 다다미치 육군 중장의 외손자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등 강경 우익 성향을 보인 바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2011년 8월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견제하려고 울릉도를 방문하려다 국내 입국이 거절된 바 있기도 하다.

기시다 총리의 봉납 및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국내에선 한국 정부가 한·일관계에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상황에도 이 같은 일이 매년 발생, 현 정부의 대일 외교 실패 사례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들의 책임을 사실상 면제해 준 '제3자 변제안'을 내놨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았음에도 신사 공물 봉납을 지속하고 있는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사다 총리.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사다 총리. 사진=뉴시스

우경화로 민심 돌리려는 듯

기시다 내각의 대대적인 신사 참배 배경을 두고선 국제적 외교 마찰에도 불구 정권 유지 차원 때문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2021년 4월 들어선 기시다 내각에 대한 일본 내 지지율은 2023년 5월 52%(니혼게이자이신문, TV도쿄 여론조사)에서 7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22.5%(산케이신문, 후지뉴스네트워크 여론조사)로 떨어졌고 올해 2월 조사에선 14%(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를 기록했다.

차기 정권 유지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우익층을 공략하기 위해 이 같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우리 정부가 외교부 공식 논평을 통해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며 "이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의 중요한 토대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밝혔으나 이에 대한 일본 측 회답은 안하무인 격이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국제적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 "기시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봉납한 것은 사적인 일로 정부 견해를 말할 사항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어느 나라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존숭의 마음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의 우경화에 대한 국내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는 모습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일본의 몰염치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도 문제지만, 이에 대해 한마디 항의도 하지 못하는 윤석열 대통령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일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발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양국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며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다"며 "국익도 실리도 내팽겨친 윤 정부의 굴종 외교가 일본의 몰염치한 과거사 역행에 명분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의 과거에 대한 성찰 없는 뻔뻔한 태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일본 정부는 불과 일주일 만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강제동원 배상판결 수용 불가 입장, 야스쿠니 신사 공물 봉납까지 외교적 도발을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전 세계 주요 언론에 이러한 상황을 고발했다"며 "AP통신, 로이터통신, CNN, BBC, 뉴욕타임스, 신화통신 등 전 세계 주요 20개국 50여개 매체에 야스쿠니 신사 및 참배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줬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고발 메일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정치인들이 지속적으로 참배하는 건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 하려는 의도로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고 강조했다.

"향후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본의 이러한 행위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려 세계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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