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신청인 적격 인정하나 "의대생 측 손해보다 정부 정책 옹호해야"
정부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깊이 감사"
민주 "2000명 증원 정당화 아냐...숫자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1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1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지영 기자]서울고법 행정7부는 16일 교수,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입학정원 증원 처분 취소" 소송의 집행정지 항고심에서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항고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의대생이 제3자라 하더라도 의대 증원 처분에 대해 '당사자 적격', 즉 다툴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4월 "의대 증원 처분의 직접 상대방은 의대를 보유한 각 대학의 장이며, 교수와 의대생 등은 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 불과하다"고 하여 당사자 적격성을 인정하지 않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번 항소심에서는 의대생에게 신청인 적격을 부여한 것에 대해 국민이 권리 구제를 받을 기회를 넓힌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항고심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들의 경우는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다며 원고 적격은 있다고 판단했지만,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각'했다. 

즉 재판부는 신청인들의 학습권 침해 등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보다, 이 사건 집행정지로 의료개혁 등 공공복리에 미칠 영향이 더 크다고 보고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항고심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필수의료, 지역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적 전제인 의대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법원 "2000명 수치 자체 근거는 다소 미흡하나 인력은 부족"

앞서 항고심 재판부는 4월 30일 교수,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심리를 진행했는데, 정부 측에 2천 명의 의대생 증원 결정과 관련해 대학의 인적·물적 시설에 대한 엄밀한 심사 여부를 포함한 과학적 근거 자료를 다음 달 10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모든 행정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당초 2000명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왔는지 제출해 달라. 최초 회의자료, 회의록 등 그런 것들 있으면 내달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법원 요청에 따라 지난 10일 의대 2000명 증원 발표 직전 개최해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록,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 결과 등 자료 47건과 별도 참고자료 2건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와 참여한 의료현안협의체의 경우 회의록이 없어 회의 결과를 정리한 보도자료 모음을 냈다. 의대 2000명 증원분을 분배한 교육부 산하 '의대정원배정위원회' 회의록은 제출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2025학년도부터 매년 2000명을 증원해야 2031년부터 매년 2000명의 의사가 배출돼 2035년이면 합계 1만명의 의사가 배출된다는 산술적 계산에 기한 것일 뿐, 2000명이라는 수치 그 자체에 관한 직접적인 근거가 특별한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의대증원 문제에 관해 의료현안협의체 등을 통해 꾸준히 논의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2000명이라는 수치가 현실적으로 제시된 것은 이 사건 증원발표 직전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사실상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의사 인력의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000명 증원의 근거가 비록 충분치는 않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설령 2000명이라는 구체적 수치는 이 사건 증원발표 당일 처음으로 제시됐다 하더라도 의사 인력의 확충을 꾸준히 논의해 왔고, 대한의사협회는 증원 규모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2000명이라는 수치 자체에 관한 근거는 다소 미흡한 것으로 보이나, 의사인력이 부족해진다는 점에 관해서는 일응 근거가 있다고 할 것"이라며 "(근거가) 비록 충분치는 않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정원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등 의대정원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정원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등 의대정원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깊이 감사"

한덕수 국무총리는 법원이 의과대학 증원 효력에 대한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에 각하·기각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16일 밝혔다.

한 총리는 항고심에서 각하·기각 결정이 내려진 직후 대국민담화를 진행했다.

그는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초읽기에 들어가게 된 데에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아있습니다만 오늘 결정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이 큰 고비를 넘어설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간 불안한 마음으로 소송을 지켜보신 수험생과 학부모들께 고생하셨다는 위로의 말씀, 정부와 함께 견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또 "집안에 아픈 가족이 계신 국민 여러분께 반가운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다는 점이 뿌듯하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의료계 집단행동이라는 해결되지 않은 난제가 남아있지만 오늘 법원 결정으로 우리 국민과 정부는 의료개혁을 가로막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며 환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사법부의 현명한 결정에 힘입어 더 이상의 혼란이 없도록 2025학년도 대학입시 관련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어 각 대학에 의대정원 증원 결정에 따른 대학별 학칙 개정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당부하는 한편, 의료계의 조속한 의료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민주 "2000명 증원 정당화 아냐...숫자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더불어민주당은 16일 법원이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을 유지하는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해 "윤 정부의 무책임한 졸속 행정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다"라며 대화와 타협을 촉구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법원의 판단은,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대원칙을 확인해 주었을 뿐 매년 2000명씩 증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 정부가 법원 결정을 빌미로 한꺼번에 2000명을 늘리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혼란과 갈등은 더욱 격화할 것"이라며 "윤 정부는 이번 법원 결정을 계기로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 원내대변인은 또한 "의대 증원은 공공·필수·지역의료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며 "민주당은 이런 방향이 확인된다면 정부와 함께 의료계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계를 향해서도 "법원 판단을 존중하여 대화에 나서주길 바란다"며 "윤 정부의 졸속 행정과 불통이 사태의 발단이지만 의료 공백으로 국민 불안과 고통이 계속되게 놔둘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이와 관련해 "정부가 의료인력 2000명 증원을 발표한 후에 정작 중요한 필수지역 의료 강화 논의는 사실상 사라졌다"며 "숫자가 뭐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료계와 힘 싸움만 거듭하느라 국민건강권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며 "민주당은 여야정과 의료계, 4자 협의체가 참여하는 국회 논의를 통해서 해법을 마련하자고 수차례 정부에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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