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협 "오늘은 350명 참가…내일 1만명 참여 예정"
채 상병 특검법 대치로 보건복지위 개최 불투명
尹, 작년 거부했던 '간호법' 재추진에 간호계·의료계 온도차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간호법안 제정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간호법안 제정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지영 기자]임기 만료를 2주 앞둔 21대 국회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이하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싸고 대치하면서 '간호법' 논의도 좌초 위기에 처했다. 이에 간호사들은 이달 말로 예정된 21대 국회 임기 만료를 앞두고 '간호법' 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보건복지위원회조차 열리지 않고 있어 간호법의 21대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 임원진과 전국 17개 시도지부, 10개 산하단체를 대표하는 350여 명의 간호사들이 22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안 제정 촉구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간호법안을 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는 국회의사당 정문 앞, 금산빌딩 앞, 현대캐피탈빌딩 앞 등 3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21대 국회는 국민 앞에 약속한 간호법안을 즉각 통과시켜라", "간호법 없는 의료개혁, 속 빈 강정이다", "간호법 없는 의료개혁, 단팥 없는 찐빵이다"라고 적힌 현수막과 "노(NO)! 티슈(TISSUE)! 간호법 약속을 지켜라", "국민 곁을 지키기 위해 간호법 투쟁"이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간호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했다.

간호계는 오는 23일에도 간호법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준비 중이다. 간협 관계자는 "23일에는 1만 명 가량이 참가하는 집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 2일 유의동·최연숙 국민의힘 의원과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간호 관련 3개 법안의 수정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단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야가 채 상병 특검법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간호법 의결에 필수적인 보건복지위원회가 열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뒤 특검 논의'를 이유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윤 대통령 취임 후 10번째 거부권 행사다. 반면 민주당은 28일로 예정된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재의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간호법이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기 위해서는 28일 이전에 보건복지위를 개최해 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의 대치로 일정 협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간협은 21대 국회에서의 간호법 통과를 여야에 강력히 촉구한 바 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사는 더 이상 티슈 노동자일 수 없다"며 "간호법은 반드시 21대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간호사들은 스스로를 티슈 노동자로 부른다"면서 "필요할 때 한번 쓰고 버려지는 간호사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지만, 필요할 때 쓰고 버려지는 휴지와 같다는 의미"라고 토로했다.

이어 "매년 2만4000여 명의 간호사를 새로 뽑지만, 1년 이내 1만4000명이 간호사를 포기하고 5년 이내 간호사 80%가 간호 현장을 떠나간다"면서 "간호사들의 과중한 업무와 불확실한 미래, 불법에 내몰리는 열악한 환경 때문으로, 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간호 관련 법안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야 정치인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고, 서로 싸우느라고 회의도 소집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서 "정치인들은 정치쇼를 멈추고 국민들 앞에 약속한 간호법 제정 약속을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5월 30일, 정부가 제출한 간호법안에 대한 재의안 일부 발췌. 사진='의안정보시스템' 정부재의안
지난해 5월 30일, 정부가 제출한 간호법안에 대한 재의안 일부 발췌. 사진='의안정보시스템' 정부재의안

尹, 작년 거부했던 '간호법' 재추진에...간호계·의료계 온도차

앞서 간호법은 지난해 야당 주도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그 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의 두 번째 법률안 거부권 행사였다.

당시 거부된 간호법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고, 의사·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 단체들이 "'지역사회'라는 문구가 간호사들의 단독 개원을 시도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며 반발했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간호법이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간호업무의 탈 의료기관화가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최근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과 장기화되는 의료 공백 사태로 인해 정부는 지난 3월 간호법 제정 재검토 가능성을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에서 "전공의에 의존하는 구조를 탈피하려면 간호사들 업무에 대한 제도화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이걸 어떤 법을 통해서라도 명시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 아니겠나"라며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2일 국회에 제출한 간호법 수정안에는 '지역사회'라는 문구 대신 간호사들이 실제 근무하는 보건의료기관, 산업현장, 학교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또한, 간호사,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자격과 업무 범위도 규정됐다. 아울러 진료보조(PA)간호사를 법제화해 자격을 인정받은 분야에서 의사의 포괄적 지도나 위임 하에 진료 지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간호계는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외줄타기가 사라질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의료계는 "불법 의료행위 양성화"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제대로 자격도 갖추지 못한 PA 간호사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가 양성화되면 의료인 면허 범위가 무너지면서 의료 현장은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해당 법안은 특정 직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법안이며, 직역 간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하며, "간호사법안은 간호사 직역 만을 위한 특별법에 불과해 전체 보건의료직종 종사자와의 형평성이 없다. 근로기준법 등 다른 법령 위반이 지적될 것이어서 현실에서 적용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의협은 "의료법 중 간호사 관련 내용 일부만을 발췌해 간호사법안을 제정하면 의료법 적용의 통일성 및 일관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간호사 면허 부여와 업무는 간호사법에, 간호사에 대한 제재(행정처분)와 벌칙에 관한 규정은 의료법에 두는 파편적 이원화 체계는 향후 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