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무한한 우주에 비하면 인간은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와도 같이 미미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와 인간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인 이성을 가졌기에 자신의 한계를 아는 위대한 존재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탐구를 통해 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꽃을 피웠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듣는 대화의 방법으로 참된 지혜를 찾고자 했다. 그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러기에 그의 제자 플라톤이 저술한 저서는 대부분이 대화편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이런 주제에 대한 긴 대화와 토론의 형식으로 그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이러한 정신을 배경으로 크게 융성할 수 있었다. 민주사회에서는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으로 토론하여, 타협하고 협상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합의점에 이르지 못할 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후 성장한 우리 세대는 명목상으로는 민주주의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교과서는 서양의 민주주의를 담고 있지만, 가정과 학교, 그리고 정치 현실은 철저하게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상황이었다.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등의 질서를 존중하는 전통,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식 교육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분단되어 생사를 건 이념 갈등을 겪으면서 그 아픈 역사로 인해 이분법적인 의견 대립의 성향이 강하다.

1960년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학급별 학생회 자치활동 조직이 있었으며, 학급의 대의원들이 모여 학교 전체의 총학생회를 구성하고, 학교 단위의 자치활동을 했다. 미래 세대를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육성하기 위해 편성된 훌륭한 교육과정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매주 생활목표를 정하고, 실천사항을 토론하는 이 자치활동이 학생들에게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간일 뿐이었다. "인사를 잘하자." "고운 말을 사용하자." 이런 모범적인 행동 규칙이 아니고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하여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등학교 총학생회 대의원회의에서 학생들의 두발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었다. 그 회의에서 남학생들의 오랜 전통인 삭발에 변화를 주고자 스포츠형 머리를 허용하자는 결정을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결정이었다.

우리 한국인은 혈연과 지연과 학연을 특별히 중요시한다. 그래서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정과 의리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으며, 의사 결정 과정에서 그 이유나 근거보다 항상 인간관계를 우선시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와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지지하고, 싫어하는 사람의 견해는 무조건 반대한다. 자기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 자기의 인격을 거부하는 것으로 여겨 섭섭해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인에게는 대화와 토론의 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먼저 대화와 토론을 통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거쳐 좋은 결론에 이르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 세대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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