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이커머스 공세에 전통 유통그룹 '주춤'
새 먹거리 된 AI…그룹 '내실 다지기' 주력

사진=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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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이종주 기자] 롯데와 신세계 등 전통 유통그룹들의 위기의식이 짙어지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C커머스와 '신흥 공룡' 쿠팡의 공세 속에 맥을 추리지 못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쿠팡에 밀려 업계 1위 자리를 내줬다. 고물가 상황 또한 겹치면서 이들 그룹은 각자의 생존전략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지난달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현황에 따르면 롯데는 포스코에 이어 6위를 유지했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에 더불어 주력사업인 유통, 화학 부문에서 외형적 성장을 끌어내기 힘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건설은 유동성 위기로 인해 지난 2월 금융사 및 롯데 그룹사와 함께 2조3000억원의 PF 펀드를 조성, 총 5조4000억원의 PF 우발채무 중 2조3000억원을 만기로부터 3년 연장했다. 또 지난해 호텔롯데와 롯데물산 등 롯데그룹 일부 계열사들이 자금보충 약정을 통해 롯데건설을 지원한 바 있다.

한편 유통 업계 1위였던 이마트는 이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신세계건설이 손실을 내면서 연결 기준 46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마트 자체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27.3% 감소한 상태다.

실적 부진뿐 아니라 쿠팡,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를 위시한 이커머스 공세도 매섭다. 쿠팡은 지난해 4분기 실적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4억7300만달러(약 6174억원)를 기록했다. 연간 매출액 30조원은 국내 유통업계 최초의 기록으로, 이마트를 넘어 '업계 1위'라는 타이틀을 결국 따냈다.

지난해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이마트는 3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계열사 대상 희망퇴직을 추진했다. 최근 승진한 정용진 회장의 경영 체질 개선을 위한 비상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희망퇴직 대상은 근속 15년·과장급 이상 직원이다. 신청자에겐 퇴직금과 별개로 월급여 24개월 분량(기본급 40개월치)의 특별퇴직금과 2500만원의 생활지원금, 직급별 1000만~3000만원의 전직지원금 등이 제공된다.

이 같은 위기감 속 그들만의 생존전략도 가속화하고 있다. 먼저 롯데의 핵심 전략은 AI(인공지능)다.

롯데는 연내 팀 단위로 제공하던 생성형 AI 플랫폼 '아이멤버'를 개인 맞춤형 AI 플랫폼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아이멤버는 기업 내부 정보를 학습시켜 안전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든 플랫폼이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롯데그룹 전 직원 각각에게 AI 개인비서가 생기는 셈이다.

롯데쇼핑은 유통 특화 AI 서비스 '라일락(LaiLAC)'의 상표를 출원, 이를 활용해 온·오프라인 사업 효율을 높일 방침이다. 롯데멤버스 4200만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사업 연계나 데이터 커머스 추진 등 B2B(기업 간 거래) 신사업은 물론 광고 제작 자동화와 AI 기반 고객 상담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 역시 최근 기초소재사업과 첨단소재사업 부문 특성에 맞춘 AI 조직을 각각 신설하고 AI 데이터 기반 연구를 강화하고 있고, 롯데홈쇼핑도 AI 쇼호스트 루시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이외에도 그룹 내 다양한 자산을 활용해 IP 등 콘텐츠 비즈니스를 강화한다. 고객 접점 채널을 넓혀 새로운 중장기적 수익 모델로 고려하겠다는 그룹 차원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신세계는 정용진 회장 취임 후 성과주의와 수익성 개선을 중점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통상적 정기 인사가 아닌 임원진 수시 인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줄곧 성과주의를 강조해왔던 정 회장의 기조가 반영된 인사 체계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 체계가 바뀌면서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밥그릇 싸움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여 그에 따른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는 특정 계열사가 기대 실적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겼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표방하고 있는 신상필벌과 성과주의 기조를 그대로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등급제를 내세우고 있는 그룹 인사제도의 특성상 성과에 따른 보상은 개인 보다는 직급에 맞춰져있다. 이를 개편해 개개인의 능력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보상의 폭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당초 신세계는 정 회장에 대한 승진과 수시 인사를 함께 단행하는 안을 검토했지만, 최근 실적 악화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불발됐다.

앞서 지난해 11월 정 회장은 경영전략실 개편을 통해 인사제도를 손보기도 했다. 전담팀을 꾸려 산하에 'KTF'(K태스크포스)와 'PTF'(P태스크포스) 등 두 개 전담팀을 신설한 것이다. 기존 제도를 혁신하고 전면적 개편을 주문해 책임경영과 인재 확보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당시 정 회장은 전략회의에서 "철저하게 성과에 기반한 인사·보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성과주의 기조에 걸맞는 인사시스템 개편을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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