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도착지 기즈번(Gisborne)의 위치.[사진=구글지도캡쳐]
두번째 도착지 기즈번(Gisborne)의 위치.[사진=구글지도캡쳐]

[월요신문=윤노리 작가]나의 뉴질랜드 캠핑 일주의 두 번째 도착지는 타우랑가(Tauranga)에서 약 4시간 30분 가량 떨어진 기즈번(Gisborne) 이란 중소도시였다. 우리나라에 대전이 있다면 뉴질랜드에는 기즈번이 있다고 할 정도로 현지에서 기즈번은 할 것 없고 놀 것 없는 '노잼'의 도시로 불린다.

 

기즈번(Gisborne) 시내의 모습. [사진=윤노리 작가]
기즈번(Gisborne) 시내의 모습. [사진=윤노리 작가]

 

기즈번(Gisborne)의 바다. [사진=윤노리 작가]
기즈번(Gisborne)의 바다. [사진=윤노리 작가]

뉴질랜드 북섬 동쪽 해안에 자리한 이 도시는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 재배 및 과수 사업을 하기에 딱 알맞은 기후와 토양을 갖춘 곳이다. 그렇다 보니 어딜 가든 대규모 와인 공장과 과수원을 만날 수 있는데 어찌 보면 논밭과 바다가 전부인 도시로 비춰져 그런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당초 캠핑 일주 목록에 기즈번은 빠져 있었는데, 운명처럼 마주한 사진 한 장에 기즈번 방문을 택하고 말았다.

페이스북(Face book)에서 우연히 사람들이 바다에서 무언가 큰 바다생물을 만지고 있는 사진을 보았고 곧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생물이 '바바라(Barbara)'라는 이름의 가오리란 걸 알게 된 것이다. 바바라에 꽂힌 나는 열심히 구글링에 나섰고 이내 기즈번의 타타포우리(Tatapouri)만(Bay)에서 '생태투어(Reef Ecology Tour)' 중 하나로 야생가오리 체험(with Wild Stingrays)이 진행된다는 걸 알게 됐다.

뉴질랜드에 10년을 살며 단 한 번도 야생동물 체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저렇게 큰 가오리라니! 뉴질랜드에서 마지막 추억남기기로 아주 적합했다. 평소 바다생물 좋아하는 아들녀석에게 말해주니 함박웃음을 짓는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기 좋아하는 딸아이는 벌써부터 준비물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내 마음도 아이들 못지않게 설레였다.

가오리 체험장의 입구. [사진=윤노리 작가]
가오리 체험장의 입구. [사진=윤노리 작가]

당일이 되어 현장을 찾아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얼른 한 자리 차지해 사진을 찍었다. 혹시나 가오리들이 주변에 있을까 바다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가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가오리 탓에 갑자기 나도 모를 불안감이 감돌기도 했다. 야생 체험은 말 그대로 '야생'이라는 특성상 해당 동물 컨디션에 의해 갑자기 취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즈번 타타포우리(Tatapouri) 해변. [사진=윤노리 작가]
기즈번 타타포우리(Tatapouri) 해변. [사진=윤노리 작가]

 

가오리 체험장의 전경. [사진=윤노리 작가]
가오리 체험장의 전경. [사진=윤노리 작가]

다행히 바다로 나갈 준비를 마친 강사들의 자신만만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내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강사들은 20여 명의 참가자들을 불러 방수 옷과 장화를 나눠줬고, 사람들 모두 들뜬 표정으로 준비를 마쳤다. 이후 해변에 반원으로 서서 바다에 들어가기 전 주의사항들과 체험에 관한 설명을 들었으며 강사들은 모래사장에 능숙하게 가오리들의 동선을 그려가며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과 체험에 관한 이것저것들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입수 전 가오리체험 방법과 안전수칙을 설명하는 강사들과 경청중인 참가자들
입수 전 가오리체험 방법과 안전수칙을 설명하는 강사들과 경청중인 참가자들

우리는 안전을 위해 대나무 지팡이 역시 하나씩 들어야 했는데 이는 파도에 의해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을 땐 주변에 가오리가 있는지 없는지 꼭 확인해달라는 당부의 말도 들었다. 5세 미만 어린이들은 안전을 위해 고무보트에 태웠고 제일 덩치가 큰 아빠 참가자 한명이 아이들을 태운 고무보트를 끌었다. 그렇게 모두 바다에 들어갔다.

안전을 위해 5세 미만 아이들은 고무보트에 탑승한다. [사진=윤노리 작가]

강사들은 이제 가오리를 부르겠다며 먹이를 살살 바다에 뿌리기 시작했고 대장 강사님은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3분 정도 흐르니 저 멀리 바닷속에 거대한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마치 군대가 몰려오듯 많은 수의 크고 작은 가오리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어느덧 내 앞에서 그 그림자의 주인공들이 뿌려진 먹이를 먹고 있었다.

"바바라!!!" 있는 힘껏 아는척을 해봤다. 하지만 착해 보이는 강사 선생님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No! 그녀는 바바라가 아니야, 아만다야. 바바라는 저기있어~" 역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을 언제나 상기하고 있어야 한다. '미안 아만다, 만나서 반갑다. 너는 바바라랑 무척 닮았구나.' 이쯤되니 사람의 부름에 나타나는 야생 가오리도 신기했지만 그 가오리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는 강사님들도 못지않게 신기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각자 가지고 있는 점 위치와 패턴이 있으며 크기를 참고해 구분한다고 해 다시 한번 놀랐다.

강사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야생가오리들. [사진=윤노리 작가]
강사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야생가오리들. [사진=윤노리 작가]

체험은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엄청 큰 가오리들이 내 주변을 돌아다녔고, 힘도 쎈 녀석들이 날 밀고 갈 때는 몸이 휘청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운 좋게 가오리가 내 앞에 오면 얼른 손을 물에 넣어 가오리 등을 쓰다듬었다. 미끈미끈, 마치 해삼의 표면 같은 미끌거림에 꽤 묵직한 단단함이 함께 느껴졌다. 가오리 등을 만진 손을 물 밖으로 빼니 자잘한 모래 같은 것이 미끈미끈한 물질과 함께 묻어나기도 했다.

가오리를 만지며 행복해하는 어린참가자. [사진=윤노리 작가]
가오리를 만지며 행복해하는 어린참가자. [사진=윤노리 작가]
예상을 뛰어넘는 야생가오리의 크기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사진=윤노리 작가]
예상을 뛰어넘는 야생가오리의 크기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사진=윤노리 작가]

몇 명의 참가자들을 가오리 쇼(?)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참가자가 먹이를 던지면 가오리가 받아먹는 체험이었는데 사실 가오리가 받아먹는다는 표현보다 먹이를 던지는 사람이 가오리 입에 잘 조준해 던져줘야 했다. 강사가 가오리의 얼굴을 들어 입이 정면을 향하게 잡아주면 참가자가 먹이를 던져 가오리 입에 넣었다. 이날의 먹이는 연어였다. 연어를 먹는 가오리라... 복이 많은 가오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이를 받아먹으려 입을 벌리고 있는 가오리. [사진=윤노리 작가]
먹이를 받아먹으려 입을 벌리고 있는 가오리. [사진=윤노리 작가]

우리 딸도 체험에 참여했는데 딸이 야심 차게 던진 연어는 가오리가 입을 잠시 다문 순간 입 주변을 맞고 떨어졌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인가! 너무 아쉬워하는 딸에게 그래도 입을 맞췄으니 가오리가 먹은 거나 마찬가지라며 위로했고 못지않게 아쉬웠던 나 스스로도 다독였다.

먹이 체험 후 가오리들은 사람들 사이를 몇 번 더 돌아다닌 뒤 이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갈 시간을 알고 있던 건지 강사들의 작은 신호에 모든 가오리들이 유유히 먼 바다로 돌아갔다. 어떻게 알고 오고 또 가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가오리 화석에 대해 설명해주는 강사. [사진=윤노리 작가]
가오리 화석에 대해 설명해주는 강사. [사진=윤노리 작가]

뭍으로 나온 후에는 가오리 화석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옛날에는 가오리 몸에서 나오는 세 개의 침으로 장비를 만들어 수렵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선조들의 지혜는 참 대단한 것 같다.

야생가오리 체험은 총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세상 어디서도 하기 힘든 체험을 뉴질랜드를 떠나기 전 가족 모두가 함께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꽤 만족스런 하루였다. 무엇보다 이날 체험은 나에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인간 스스로 너무 담을 쌓고 있기에 어려웠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아생 가오리들과 강사들을 보고 있자니 말이 통하지 않은 사이라 해도 서로 간의 유대가 형성된다면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별달리 보고 즐길 게 없어 뉴질랜드 대표 노잼 도시라만 여겼던 기즈번. 역시나 사람은 직접 가보고 경험해 봐야 아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도 조금 성장할 수 있었던 기즈번 탐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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