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어 스타머 신임총리 "르완다 계획 완전히 끝났다"
"브렉시트 되돌리지 않겠지만, EU 협력관계 재건할 것"

찰스 3세 영국 국왕(오른쪽)이 5일 버킹엄궁에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노동당 지도자 기어 스타머와 악수하며 새 정부 구성을 위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찰스 3세 영국 국왕(오른쪽)이 5일 버킹엄궁에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노동당 지도자 기어 스타머와 악수하며 새 정부 구성을 위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이종주 기자] 최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제1야당인 노동당이 14년 만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정권을 탈환했다. 침체된 경제 상황 속에서 전 정부의 급증한 이민자 문제, 공공의료 붕괴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유권자들이 노동당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당 키어 스타머 신임 총리는 직전 정부의 간판 정책으로 추진한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하며 정부 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한 상황이다.

4일(현지 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하원 650석 가운데 648석이 확정된 상황에서 노동당은 412석으로 과반(326석)을 넉넉하게 확보해 압승했다. 반면 집권 보수당은 121석으로 기존 의석보다 250석을 잃고 참패했다.

당초 전날 결과가 나올 예정이던 스코틀랜드 '인버네스, 스카이, 웨스트 로스-셔' 선거구에서 이날까지 두 번이나 재검표가 이뤄지면서 의석 확정이 늦어졌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이번 선거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이곳의 의석은 자민당 후보에게 돌아갔다.

2019년 총선 때와 비교하면 노동당은 214석이 늘었고, 보수당은 252석이 줄었다. 자민당은 64석이 증가한 반면 SNP는 38석이 감소했다. 지난 총선에서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던 영국개혁당은 5석을 늘려 사상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키어 스타머 "변화 이제 시작…'르완다 계획' 완전히 끝났다"

차기 총리가 된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지역구인 런던 북부 '홀번 앤드 세인트팽크러스'에서 당선된 뒤 "변화는 이제 시작된다"며 "변화를 이룬 노동당, 나라를 섬길 준비가 된 노동당,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국을 회복할 준비가 된 노동당"이라고 외쳤다.

스타머 대표는 인권 변호사 출신 법조인으로 2008년부터 5년간 잉글랜드·웨일스를 관할하는 왕립검찰청(CPS) 청장을 지낸 뒤 2015년 하원의원 당선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19년 노동당 대표에 취임한 뒤 5년 만에 '위축된' 영국을 이끌 책임이 주어졌다.

노동당은 1997년 토니 블레어 체제(418석) 때엔 다소 못 미치지만,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에 집권을 내준 뒤 14년 만에 기록적인 승리를 거두게 됐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국립육군박물관에서 선거 유세를 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국립육군박물관에서 선거 유세를 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스타머 총리는 취임 하루 만인 이날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첫 기자회견을 열고 "르완다 계획은 시작하기도 전에 완전히 끝났다(dead and buried)"고 밝혔다.

그는 "나는 (이주민 유입) 제지 효과가 없는 속임수(gimmicks)를 계속 진행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르완다 정책은 불법 이주민 급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당의 리시 수낵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정책이다.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오는 망명 신청자를 영국에서 머무르게 하지 않고 르완다로 보내자는 것이 골자다.

보수당 수낵 총리, '조기총선 도박' 참패…"이 패배는 내 책임"

반면 리시 수낵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창당(1834년) 이후 최소 의석수에 그쳤다. 수낵 총리는 이날 1년8개월 만에 사임을 발표하며 "국민 여러분은 영국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며 "이 패배는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보수당 대표에서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수낵 총리는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정치 행보는 이어가게 됐으나, 그에 앞서 감세 정책 후폭풍으로 단 49일 만에 낙마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 등 당내 거물급 인사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이번 총선은 인플레이션이 다소 진정되고 경제지표가 정상화될 기미가 보이던 지난 5월22일 수낵 총리가 '깜짝 조기 총선'을 발표하며 치러지게 됐다. 보수당의 지지율이 노동당보다 20%포인트가량 뒤처지는 상황에서 던진 수낵 총리의 '승부수'는 사실상 정치적 도박에 가깝다는 평가가 잇달았다.

스타머 총리의 노동당은 앞선 총선 유세 기간에도 르완다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스타머 총리는 수낵 정부의 르완다 정책이 불법 이주민 방지는 물론 예산 투입 측면에서도 효과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신 국경안보본부를 신설, 국경을 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올 상반기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에 유입된 이주민 수가 최대치를 기록한 상황에 당장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불분명하다고 AP 통신은 짚었다.

또한 스타머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멀어진 EU와의 관계 개선에도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 5일 취임한 데이비드 래미 외무 장관은 이튿날인 6일 영국의 주요 파트너인 폴란드, 독일, 스웨덴 순방에 나서면서, 협력·안보 회담도 진행했다.

가디언은 "(이 순방 자체가) EU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브렉시트 시대를 종식하겠다는 스타머 정부의 새로운 계획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스타머 총리는 취임 전부터 "브렉시트를 되돌리지는 않겠지만, 취임 후 EU와의 협력 관계를 재건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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