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AI ·반도체 집중투자, 비주류는 매각
핵심 계열사 재무구조 개선, 경쟁력 강화 착수

SK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SK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전지환 기자]재계 2위 SK그룹이 고강도 조직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SK는 그간 무분별하게 진행된 투자로 외형만 불어나 위기에 봉착했다는 자체 평가아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쇄신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SK온 재무개선 및 AI ·반도체 투자 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에서 29일까지 양일간 SK그룹은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SKMS연구소에서 2024년 경영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경영전략회의에는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오너 경영인은 물론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30여명 참석했다.

SK그룹은 이번 경영전략 회의를 통해 관리가 어려운 곳과 중복투자 사업을 정리해 효율적인 경영 체계를 구축해 투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확보한 투자금은 AI ·반도체 등 신사업에 사용될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SK그룹은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인해 적자의 늪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SK온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사업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도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오프닝 스피치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오프닝 스피치를 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19개 계열사도 정리 들어가 

SK그룹이 사업 리밸런싱(구조조정)에 나선 배경에 대해선 계열사가 219개까지 늘어나면서 조직이 비대해지고 비효율이 심해졌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실제 SK는 국내 대기업 집단 중 가장 많은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SK외 다른 10대 그룹의 계열사 수는 ▲삼성 63개 ▲현대차 70개 ▲LG 60개 ▲포스코 47개 ▲롯데 96개 ▲한화 108개 ▲HD현대 29개 ▲GS 99개 ▲농협 54개 등에 불과하다. SK 다음으로 계열사가 많은 한화그룹 계열사 수도 SK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선 "이름만 들어서는 뭐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없는 회사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기도 했다. 

SK그룹 계열사가 이처럼 많이 늘어난 요인으로는 그간 SK가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하며, 계열사를 불려 왔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SK에코플랜트는 건설에서 환경·에너지 분야로 투자를 확대하며 지난 2021년 소각업체 대원그린에너지(현 리뉴원)를 인수했고, 이후 사업 구조 재편을 거쳐 현재 리뉴원 종속기업으로는 ▲리뉴에너지대원 ▲리뉴에너지그린 ▲리뉴에너지전남 ▲리뉴에너지충남 ▲리뉴에너지새한 ▲리뉴에너지메트로 ▲리뉴랜드청주 ▲리뉴콘대원 ▲리뉴로지스 등이 있다.

또한 SK그룹이 투자사 기능을 강화한 영항도 계열사 증가 요인으로 거론된다. 이와 관련 2021년 출범한 그룹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는 23개 기업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18개 회사가 적자를 내고 있다. 그로 인해 SK스퀘어의 연간 영업손실도 2조 3397억원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비주류 사업 매각 및 현금 확보

SK그룹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경영진 회의에서 "계열사 숫자가 너무 많다"며 "관리 가능한 범위 내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219개라는 수 많은 계열사 중 수익성이 없거나 사업이 겹칠 경우 합병하거나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쉽게 말해 중복 사업의 경우 1등과 4등 회사 혹은 2등과 3등 회사를 합병하거나 수익성이 좋은 회사와 부진한 회사를 합쳐 시너지를 꾀하는 방식이다.

다만 일각에선 SK에코플랜트 사례처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인수한 기업에 딸려 온 자회사가 많아 계열사를 쉽게 줄일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밖에도 SK그룹은 비주력 자산 처분을 통한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베트남 재계 2위 유통기업인 마산그룹에 풋옵션(주식 매도 권리) 행사 의지를 표명했다.

SK그룹은 지난 2018년 당시 투입했던 금액은 4억5000만 달러(당시 환율 한화 약 5300억원)로 올해 말까지 원금과 이자분을 회수할 계획이다. 양사 간 지분 매각 협상은 현재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SK그룹은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인 빈그룹과도 지분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SK는 2019년 빈그룹 지분 6.1%를 10억 달러(당시 환율 한화 약 1조18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SK가 두 그룹의 지분 매각을 완료할 경우 회수 금액은 총 1조원이상으로 알려졌다.

이와 동시에 SK그룹은 인적 쇄신도 진행했다. SK온은 지난해 8월 영입한 성민석 최고사업책임자(CCO)를 보직 해임으며,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 역시 임기를 못 채우고 떠났다.

SK하이닉스 AI용 초고성능 D램 신제품 HBM3E.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AI용 초고성능 D램 신제품 HBM3E. 사진=SK하이닉스

AI ·반도체 투자 확대, SK온 회생 착수 

SK그룹 수익성 개선과 사업구조 개선, 시너지 제고 등을 통해 오는 2026년까지 80조원 재원을 확보해 AI와 반도체를 비롯한 미래 성장 분야에 선제 투자하고 밸류체인 정비 등 근본적 체질 변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번 계획으로 SK하이닉스는 계열사별로 2028년까지 총 5년간 10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및 AI 관련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 중 80%는 HBM과 AI 사업에 쓰일 예정이며, SK브로드밴드, SK텔레콤, AI 데이터센터 사업에는 약 3조4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또한 SK그룹은 SK네트웍스를 AI 중심 중간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 사업분할을 단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스피드메이트사업부와 트레이딩사업부를 오는 9월·12월에 각각 분사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SK이노베이션과 같은 중간지주사 체제로 나아갈 방침을 세웠다.

AI ·반도체 투자 확대만큼 중요한 것이 SK온을 구하기 위한 구조조정이다. SK온을 회생시키기 위한 방안으로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이 성사될 경우 매출 규모 90조원, 자산 총액이106조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SK그룹이 이 같은 방안을 검토하는 요인으로는 SK온의 모기업인 SK이노베이션이 SK온을 지원하다 재무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월 높은 자본적지출(CAPEX)과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 등으로 인해 국제신용평가사 S&P글로벌로부터 신용등급이 기존 BBB-(부정적)에서 투기등급으로 분류되는 BB+(안정적)까지 강등됐다.

그로 인해 SK E&S의 뛰어난 현금 창출 능력이 이번 합병 추진의 주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SK E&S는 지난해 매출 11조2489억원, 영업이익 1조4191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합병이 결정될 경우 SK온의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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